세계 사회현상의 흐름을 주도하는 미국을 살펴보자. 미국은 그 어느 나라보다 정보화 산업의 최전선에 위치해 있으며, 이를 기반으로 막강한 문화적 영향력을 행사한다. 대개 미국에서 먼저 고개를 든 사회적 변화는 시차를 두고 다른 국가들로 확산하는 경향을 보인다. 정보 플랫폼의 진화가 불러온 명암 역시 미국에서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뚜렷하게 관찰된다.
실제로 미국의 정보 플랫폼 생태계에서는 이미 정치 분야를 중심으로 대중의 인식을 이끄는 선구자적 크리에이터들이 강력한 세력을 형성하고 있다. 공화당 성향의 벤 샤피로(Ben Shapiro)는 700만 명, 민주당 진영을 대변하는 브라이언 타일러 코헨(Brian Tyler Cohen)은 500만 명에 달하는 구독자를 보유 중이다. 양당의 입장을 대변하는 이들 크리에이터는 정치 및 사회문제에 대한 자신만의 견해를 생산하며 대중을 설득하고 여론을 움직인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이들의 설득에 응하여 크리에이터를 구독하고 따르며 각 정치 진영의 열렬한 지지자가 되어 그들의 권력이 되어준다. 그 결과로 실제 정치적 거물들이 이들과 단독 인터뷰를 진행하는 등 강력한 사회적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는 이들이 대중의 생각과 흐름을 이끄는 현대판 '선지자'로서의 위치를 보여준다.
이들은 사회정의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며 세상이 나아가야 할 올바른 방향(그들의 기준에서의)을 제시한다. 이들의 콘텐츠는 대중들이 느끼는 삶 속의 불합리함이나, 미처 생각지 못하고 지나쳤던 부조리와 같은 부분을 짚어주고 그들의 입장에서 변론하고 싸워준다. 대중들은 선지자들이 제공하는 사회의 가려운 곳을 조목조목 따지는 시원한 ‘사이다’ 영상을 보면서 일종의 해방감을 느끼며 기꺼이 그들을 따르는 지지자가 되는 것이다.
그렇게 모인 지지자들은 스스로 커뮤니티를 형성하며 더욱 강한 자기확신을 얻는다. 그리고 이는 다시 선지자의 견해와 언행에 신뢰성을 부여한다. 커뮤니티가 확장될수록 선지자의 말은 어느새 반박할 수 없는 '진리'가 되어 거스르기 힘들어진다. 선지자 역시 인간이기에 얼마든지 오판할 수 있고, 자신이 정의롭다는 착각 속에서 진실을 왜곡할 수 있다는 사실조차 잊은 채 무조건적으로 맹신하는 것이다.
이러한 집단적 맹목성은 비단 눈에 보이는 거대한 세력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다. 꼭 100만 명, 500만 명의 구독자를 거느린 영향력자들만이 선지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수만, 수십만 명 남짓한 온라인 커뮤니티 안에서조차 정체 모를 주장이 반복되기 시작하면, 그 울타리 안에서는 어느새 그것이 대체 불가능한 진리로 굳어진다. 규모와 상관없이, 진실과 멀어진 환상을 사실처럼 유포하고 유통한다면 그들 역시 '거짓 선지자'인 셈이다.
집단 형성과 동조 압력: 본인의 목소리를 정의와 진실로 믿고 전파하는 지지자 커뮤니티의 구축
이 세 가지는 거짓 선지자가 되기 위한 필수적인 조건이다. 유력 크리에이터, 정치인, 사이비 종교 교주, 음모론 주동자에 이르기까지 대중을 선동하는 이들은 모두 동일한 방식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권력을 획득한다.
그 중 '어떤 정보를 유통할 것인가'의 선택은 거짓 선지자의 프레이밍을 완성하는 첫 단추가 된다. 이들은 철저히 자신의 주장에 부합하는 유리한 사실만을 취사선택하여 전달한다. 이는 음모론자들이 음모를 구성하는 방식과도 완벽히 일치한다. 온갖 합리적인 반박과 과학적 상식이 존재하더라도, 자신의 시나리오에 들어맞는 파편적인 정보(그것이 진짜 사실인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단 하나만 쥐고 있다면, 이를 끊임없이 확대 재생산하여 지지자들에게 마르지 않는 믿음의 근거를 제공하는 식이다.
'견해를 사실처럼 전달하기'는 이보다 훨씬 더 은밀하고 교묘하다. 원리는 단순하다. 명백한 사실(Fact)을 연달아 늘어놓아 청자의 경계심을 완전히 무너뜨린 뒤, 슬며시 본인의 주관적 견해(Opinion)를 끼워 넣고, 다시 아무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로 문장을 마무리하는 구조다.
[샌드위치 기법의 구체적인 예시]
"어제 우리 지역에 100mm가 넘는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졌습니다. (명백한 사실)"
"이로 인해 하천이 범람하고 수많은 주민이 긴급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죠. (명백한 사실)"
"이는 전적으로 현 지자체장이 재난 대비 예산을 삭감하고 직무를 유기했기 때문에 발생한 인재입니다. (개인적 견해 및 선동)"
"기후 변화로 매년 기습 폭우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우리는 더 안전한 대책이 필요합니다. (명백한 사실)"
대중은 앞뒤의 명백한 사실 관계를 들으며 화자의 전문성과 진실성을 고스란히 신뢰하게 된다. 그리고 그 신뢰의 틈바구니 속에 교묘하게 끼어든 '지자체장의 유기'라는 주관적 견해 역시 검증 없이 하나의 차가운 사실로 받아들이고 만다. 이러한 샌드위치 식의 정보 가공 기법은 대중이 의심할 틈조차 주지 않은 채, 특정 크리에이터의 사적인 해석을 사회적 정의이자 움직일 수 없는 진실로 둔갑시키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된다.
애쉬의 동조실험
마지막으로, 자신을 추종하는 강력한 '집단'을 구성하는 것은 거짓 선지자가 권력을 완성하기 위한 필수적인 요소다. 심리학의 유명한 동조 실험이 증명하듯, 인간은 집단이 형성한 규칙이나 지배적인 분위기 속에서 개인의 합리적인 판단을 거두고 너무나도 쉽게 순응해 버린다.
혼자일 때는 눈에 보이는 거짓에 의문을 품던 개인이라도, 주변의 수많은 동료 지지자가 그것을 진실이라 외치기 시작하면 이내 자신의 감각을 의심하고 다수의 의견에 동조하고 만다. 거짓 선지자들은 이 집단적 동조 압력을 영리하게 활용한다. 견고하게 결속된 추종자 집단을 구축함으로써, 개별 구성원이 집단에서 이탈하거나 의문을 제기하는 것 자체를 차단하고 그들이 만든 왜곡된 진실 속에 스스로를 가두도록 만드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집단적 동조와 맹목성이 오늘날 미디어 환경을 만나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한 파급력을 얻게 되었다는 점이다. 거짓 선지자들은 정보화 시대의 플랫폼을 타고 다양한 분야로 확산하고 있으며, 이들의 자극적인 메시지가 알고리즘과 결합하면서 사회 전체가 이 왜곡에 취약해졌다. 결국 우리는 내 피드에 나타나는 인물이 진실된 선지자인지 거짓된 선지자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환경에 놓이게 된다. 과거 히틀러나 마오쩌둥의 평가처럼, 훗날 시간이 흐르고 커다란 대가를 치른 뒤에야 비로소 그 실체를 깨닫게 되는 비극이 반복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