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시간, 인파로 북적이는 강남역 횡단보도 앞. 신호를 기다리는 수많은 사람들 틈에서 우연히 두 디자이너의 대화를 엿듣게 된 적이 있다. 그들은 웹디자이너에서 앱 디자인으로 이직하는 것은 어렵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도 회사에서 B2B 웹앱을 디자인하기 때문에 나도 앱 디자인을 하고 싶을 때는 이직이 어려울까라는 고민을 잠깐하게 됐다. 사이드프로젝트로 직접 앱을 개발하고 출시까지 해본 경험이 있는 나로서는 앱디자인과 웹디자인을 하는 것이 서로 특별히 크게 다르다고는 경험하지 못햇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디자이너들 사이에서 웹 디자인과 앱 디자인이 완전히 다르다는 인식이 있다는 사실이 안타까웠고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씁쓸함이 밀려왔다.
물론 채용 시장의 현실적인 이유를 무시할 수는 없다. 기업은 언제나 실패 비용을 최소화하고 싶어 한다. 당장 내일 실무에 투입되어야 하기 때문에 앱만운영하는 회사는 앱디자인을 경험했던 사람을 웹만 운영했던 사람은 웹디자이너만 채용하려고 하는 관성이 있다. 또한 디자인 비전문가인 인사팀에게 포트폴리오 이면에 숨겨진 디자이너의 잠재력이나 문제 해결 능력까지 완벽하게 꿰뚫어 보라고 강요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정작 디자이너들 스스로도 "웹과 앱은 태생부터 다르다", "나는 웹만 해서 앱은 건드리기 무섭다"며 스스로 한계를 긋고있는점이 더 안타깝게 느껴졌다. "나는 웹 디자이너니까"라는 말 뒤에 숨어,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스스로 차단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러한 이분법적 사고야말로 디자이너의 잠재력을 가두고 성장을 저해하는 가장 안타까운 관습이자, 스스로 만든 보이지 않는 감옥이다.
우리가 왜 이렇게 웹과 앱을 칼같이 나누게 되었는지 이해하려면, 시계를 2010년대 초반 스마트폰 태동기로 돌려봐야 한다. 당시에는 이 구분이 타당할 수밖에 없었던, 아니 필수불가결했던 물리적, 환경적 제약들이 존재했다.
첫째, 입력 도구의 차이가 만든 '정보 구조'의 간극이다. PC 웹은 마우스 커서라는 정교한 포인터가 있었고, '호버(Hover)'와 '우클릭(Right Click)'이라는 강력한 상호작용 방식이 존재했다. 사용자는 클릭하지 않고도 마우스를 올리는 행위만으로 툴팁을 보거나, 우클릭으로 숨겨진 메뉴를 호출하며 정보를 탐색할 수 있었다. 반면 모바일 앱은 손가락 터치가 기반이다. 여기엔 호버도, 직관적인 우클릭도 없다. 오직 '누르거나, 안 누르거나' 둘 중 하나다. 이 때문에 앱은 숨겨진 정보를 밖으로 꺼내거나 '스와이프' 같은 전혀 다른 문법을 창조해야 했다. 이처럼 물리적 상호작용 방식 자체가 달랐기에, 당시 디자이너들이 웹과 앱을 완전히 다른 세상으로 인식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었다.
둘째, 반응형 웹 기술의 부재였다. 지금은 너무나 당연한 '반응형 웹(Responsive Web Design)' 개념이 당시에는 갓 태동한 수준이었다. 하나의 소스로 PC 모니터와 모바일 화면을 동시에 대응하는 기술이 보편화되지 않았고, 모바일 브라우저의 성능 또한 조악했다. 그래서 기업들은 PC용 웹사이트(www.example.com)와 모바일 전용 웹사이트(m.example.com)를 아예 따로 구축하고 관리했다. 이는 개발 코드뿐만 아니라 디자인 리소스, 기획 문서마저 이원화시켰다. 결국 "웹 디자이너는 큰 화면만 그리고, 앱 디자이너는 작은 화면만 그린다"는 업무 분장이 자연스럽게 고착화되었고, 이것이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의 무의식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강산이 변한다는 10년이 지났고, 과거의 선들은 기술의 눈부신 진화 앞에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다. 과거의 제약 조건들이 사라진 지금, 구분을 위한 구분은 무의미하다. 가장 큰 변화는 반응형 기술의 완성이다. 이제 CSS의 미디어 쿼리(Media Query), 플렉스박스(Flexbox), 그리드(Grid) 시스템을 통해 하나의 소스 코드가 1920px의 대형 모니터부터 375px의 스마트폰, 심지어 태블릿과 폴더블폰의 가변적인 화면까지 유연하게 대응한다. 기술적으로 웹과 모바일의 경계는 이미 사라졌다. 모바일 웹으로도 네이티브 앱에 준하는 인터랙션을 구현할 수 있는 시대다.
여기에 결정타를 날린 것은 디자인 도구(Tool)의 혁명이다. 과거 디자이너들의 주력 도구는 포토샵(Photoshop)이었다. 포토샵은 본래 사진 편집 도구였기에, 픽셀 하나하나를 찍어내는 비트맵 방식을 사용했다. 이 방식은 수정이 어렵고, 해상도가 바뀌면 이미지가 깨지기 일쑤라 다양한 화면 크기에 대응하려면 각 해상도별로 시안을 따로 만들어야 하는 고역을 치러야 했다. 이는 디자이너가 '고정된 화면'에 집착하게 만드는 원인중 하나였다.
하지만 스케치(Sketch), XD, 피그마(Figma) 등 벡터 기반의 UI 전용 툴이 등장하면서 혁명이 일어났다. 이제 디자이너는 수학적 계산에 기반한 벡터 방식으로 하나의 컴포넌트를 만들고, 그것을 늘리고 줄이며 다양한 해상도에 실시간으로 대응한다. '오토 레이아웃(Auto Layout)' 기능을 통해 컨텐츠 양에 따라 버튼 크기가 자동으로 변하고, 화면 너비에 따라 리스트가 그리드로 변하는 것을 시뮬레이션한다.
우리는 이제 '고정된 픽셀'을 그리던 장인(Artisan)의 시대에서, '유동적인 시스템'을 설계하는 엔지니어(Engineer)의 시대로 넘어왔다. 도구가 바뀌면 사고방식도 바뀐다. 기술과 도구가 이미 물리적 경계를 지웠는데, 우리의 인식만 과거의 관습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
현재 모든 지표가 시장은 앱을 선호한다고 말핞다. 실제로 사용자의 체류 시간(Time Spent) 데이터는 앱이 웹을 압도하고, 이에 따라 채용 시장에서도 앱 디자이너에게 더 높은 연봉과 처우를 제시하는 경우가 많다. 나조차도 일상의 대부분을 스마트폰 앱으로 해결하는 것이 훨씬 편하고 익숙하다.
하지만 여기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점은, 사용자들이 느끼는 '진짜 편안함'의 기준이 진화했다는 사실이다. 예전에는 "스마트폰 앱이 있으면 편하다"였지만, 이제는, 그리고 앞으로는 “앱에서도 되고 웹에서도 되어야 비로소 편하다"는 것이 새로운 기준이 되었다. 상상해 보자. 퇴근길 지하철에서는 스마트폰 앱으로 아이쇼핑을 하며 장바구니에 물건을 담는다. 집에 도착해서는 더 큰 PC 화면으로 제품의 상세 스펙을 꼼꼼히 확인하고 결제하길 원한다.
즉, '앱이 편하다'는 것이 '웹은 필요 없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나의 경우에는 핸드폰으로 하던 주식거래를 컴퓨터로도 차트를 보고 확인할 수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KB 증권의 웹, 앱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 이처럼 사용자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접속 경로와 상관없이 끊김 없는 경험’이다. 애플이 아이폰, 아이패드, 맥북을 오가는 매끄러운 연동성으로 독보적인 프리미엄 가치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점을 상기해보면, 우리가 비즈니스적으로 지향해야 할 목표는 분명하다.
웹 디자인과 앱 디자인의 변화가 찾아오는 현재의 상황을 스포츠에 비유하자면, 웹 디자인이 '축구'라면 모바일 디자인은 '풋살'과 같다. 축구는 넓은 잔디 구장에서 11명이 뛰고, 풋살은 좁은 실내 코트에서 5명이 뛴다. 경기장의 규격이 다르고, 공의 탄성이 다르며, 전술의 템포가 다를 수는 있다. 하지만 "팀이 유기적으로 움직여 공을 상대 골문에 넣는다"는 승리의 대원칙과 본질은 완벽하게 동일하다. 축구 선수가 풋살을 한다고 해서 갑자기 손으로 공을 던지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사용자(관중)가 원하는 것은 시원한 '골(Goal)', 즉 문제의 해결이다. "이 경기장은 잔디가 다르니 골을 못 넣어도 이해해 주세요", "공이 너무 작아서 패스를 못 하겠어요"라는 변명은 프로의 세계에서 통하지 않는다. 캔버스의 크기가 1920px에서 375px로 달라졌다고 해서 디자인의 본질이 변하는가? 사용자의 문제를 정의하고, 정보의 위계를 설계하며, 논리적인 흐름(Flow)을 만드는 디자인의 핵심 역량은 변하지 않는다.
해상도라는 물리적 숫자에 매몰되지 않고 그 이면의 맥락(Context)을 읽어내는 선수는 경기장이 바뀌어도 금방 적응한다. 웹 전문가는 앱에서도 훌륭한 플레이를 보여줄 수 있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이제 시야를 더 넓혀보자. IT 디자인의 뿌리는 결국 HCI(Human Computer Interaction)에 닿아 있다. 여기서 '컴퓨터'는 책상 위의 PC와 손안의 스마트폰을 넘어, 우리 주변의 모든 사물로 확장된다. 키오스크, 자동차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스마트 가전, 심지어 공장이나 병원에서 움직이는 로봇(Robot)까지, 연산을 수행하고 인간과 상호작용하는 모든 기계가 컴퓨터다.
이 거대한 흐름 속에서 "나는 웹 디자이너라 로봇 인터페이스는 몰라요", "나는 앱 디자이너라 자동차 UI는 안 해봤어요"라는 말은 설득력을 잃는다. 물론 심미성은 중요하다. '보기 좋은 디자인이 사용하기도 좋다 뛰어난 그래픽 역량은 사용자의 신뢰와 몰입을 이끌어내는 필수 조건이다. 하지만 디자이너의 역할은 단지 화면을 예쁘게 꾸미는 '그래픽 기술자'에 머무르지 않는다.
HCI의 대가 도날드 노먼(Donald Norman)이 그의 저서에서 지적했듯, 기계는 본질적으로 '단방향적(Unidirectional)'이다. 기계는 스스로 사용자의 기분을 살피거나 맥락을 배려하지 않는다. 그저 입력된 코드대로 수행할 뿐이다.
디자이너의 과업은 이 융통성 없는 차가운 기계가, 마치 인간과 따뜻한 '양방향 대화(Bi-directional Communication)'를 나누는 것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것이다. 화면 속의 버튼이든, 로봇의 깜빡이는 눈빛이든, 본질은 언제나 '대화의 설계'다. 그 대화의 매개체가 웹 브라우저인지 로봇의 LED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여기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내가 말하는 '경계를 넘는 것'이 어설픈 제너럴리스트가 되어 얇고 넓은 지식을 뽐내라는 뜻은 아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앱과 웹을 뛰어넘는 인간공학, HCI라는 본질, 사용자를 생각하는 자세와 태도의 전문성을 만들어야 한다.
웹이든 앱이든 하나의 시스템을 완성도 있게 만들기 위해서는 수없이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끈질기게 발전시키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폭넓게 아는 것은 시작일 뿐, 해결책 그 자체는 아니다.
기계는 냉정하고 융통성이 없지만, 그 한계조차 결국은 설계자의 생각의 크기에 종속된다. 우리가 '인격'이라고 부를 만한 완전한 AI가 등장하기 전까지, 모든 기계(AI 포함)는 디자이너가 그어놓은 생각의 울타리 안에서만 움직인다. 디자이너가 책상 앞에서 10가지 상황만 상상했다면, 기계는 11번째 현실을 마주한 고객 앞에서 멈춰버리거나 오류를 뿜어낸다.
"사용자가 결제 도중 뒤로 가기를 누르면 데이터는 어떻게 처리되지?"
"지하철에서 네트워크가 끊기면 앱은 어떤 메시지를 보여줘야 불안하지 않을까?"
진정한 편의성은 혼자만의 상상 속 시뮬레이션이 아니라, 실제 고객과의 대화, 그리고 현실 세계와의 충돌에서 나온다. 경계를 허문다는 것은 기술의 장벽을 넘는 것을 넘어, 내 생각의 한계를 넘어 고객의 현실로 들어가는 치열함을 의미한다.
역할의 사랑에 빠져 본질을 놓치지 마라
결국 답은 명확하다. 우리는 본질을 살펴야한다.
만약 당신이 여전히 '나는 모바일 디자이너야', '나는 웹 디자이너야'라는 좁은 타이틀에만 머물며 분류를 고집하고 있다면, 냉정하게 말해 자신의 현재 역할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더 넓은 세상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역할은 단지 수단일 뿐인데, 수단을 정체성으로 착각하는 순간 성장은 멈춘다.
UI/UX 디자이너로서의 진정한 전문성은 특정 매체나 기술 스택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다. 웹이든, 앱이든, 혹은 로봇이든, 차가운 기계와 따뜻한 사람 사이의 가장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대화를 완성해내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유일한 본질이자 변치 않는 전문성이다.
기술의 파도는 계속 바뀐다. 어제는 웹이었고, 오늘은 앱이며, 내일은 AI와 공간 컴퓨팅이라는 거대한 해일이 몰려올 것이다. 특정 파도(매체)에만 집착하며 선을 긋는 사람은 파도가 바뀌면 휩쓸려 사라진다. 하지만 균형 감각(본질)을 익힌 사람은 어떤 파도가 오든 그 위에서 유연하게 서핑(Interaction)을 즐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