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나에게 남기는 기록이며, 사랑하는 친구들에게 쓰는 편지이자, 모든 이가 읽을 수 있는 수필이다.
2025년, 세상의 풍경은 사뭇 달라졌다. AI는 어느덧 마음을 위로해주는 친구이자, 글을 다듬어주는 선생님, 복잡한 코딩을 돕는 든든한 조력자가 되어 우리 삶의 깊숙한 곳까지 들어왔다. 하지만 빛이 밝을수록 그림자도 짙은 법. 기술이 주는 달콤한 편리함 뒤편으로는 전 세계적인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고물가와 AI로 대체될지 모른다는 고용 불안이 덮쳐왔다. 새로운 기술의 축복과 오랫동안 곪아 터진 사회의 구조적 문제들이 뒤엉킨, 그야말로 혼란스러운 변곡점의 해인 것이다.
세상이 빠르게 변하는 동안 나의 작은 삶도 예고 없이 요동쳤다. 2025년 3월 초, 퇴근하고 집에 돌아왔더니 현관문에 통지문이 붙어있었다. 그날따라 현관등도 켜지지 않았다. 단순한 광고 전단인 줄 알고 떼어내어 버리려다 집 안에서 확인해보니, 5평짜리 작은 자취방이 경매에 넘어갔다는 통지서였다. 순간 놀랍고 고통스러운 마음이 덮쳐왔지만, 신기하게도 2개월 정도가 지나자 그런 마음은 사라졌다.
빨리 제정신을 차릴 수 있었던 건 2024년의 이직과 사업 경험 덕분에 '인생에 정말 중요하고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의 답을 찾았기 때문이다.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꿈? 돈? 명예? 사랑? 신앙? 아니다. 바로 ‘나’로서 살아가는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 존재하지 못하기 때문에 무언가를 강렬하게 열망하며 그것의 노예가 된다. 돈의 노예, 꿈의 노예, 정의의 노예, 사랑의 노예. 그것들 모두 온전한 ‘나’가 아니다. 그러니 돈이 없다고, 사랑이 없다고, 삶이 정의롭지 않다고 해서 내가 고통스러울 이유는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전세 사고라는 ‘사건’ 앞에서도 나는 우울해하기보다 찬란한 한 해를 보내기로 했다. JLPT N3 시험과 후쿠오카 여행, 일본어 회화모임 등 일본어를 통해 언어적 세계를 넓히고 새로운 인연을 맺었다. 또한 일요일마다 개인 웹사이트를 개발하고 글과 서평을 연재하며 내면을 견고하게 다졌다. 작성한 글들은 흐릿한 생각들을 뚜렷하게 정리해주었고, 독서가 주는 새로운 즐거움을 일깨워 주었다.
매일 퇴근길, 강남에서 신림까지 20분. 사람들로 붐비는 답답한 지하철 안에서 나는 기어코 스마트폰을 꺼내 나만의 작은 독서 공간을 만든다. 업무로 지끈거리던 머리도 책을 읽다 보면 어느새 차분하게 가라앉는다. 올해는 <기억 전달자>, <싯다르타>와 같은 소설의 이야기들 안에서 나는 비로소 온전한 나를 마주할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삶을 짓누르던 무거운 물음표들이 가벼운 느낌표로 바뀌었다. 고통이라 여겼던 것들은 찰나의 역할극일 뿐이며, 운명을 사랑하는 마음속에 이미 천국이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부처와 그리스도의 가르침도 결국은 세상 모든 것을 사랑하라는 속삭임이었음을 이제는 이해한다.
나에게 소중한 깨달음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뜬구름 잡는 소리로 들릴 수 있음을 안다. 내가 쓴 이 글에도 깨달음 그 자체는 담겨있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순전히 각자의 개인적 경험을 통해서만 체득할 수 있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내 이야기가 온전히 이해받지 못하리란 사실 또한 담담히 받아들인다. 깨달았다고 해서 내 인생이 기적처럼 바뀌는 것도 아니다. 나는 여전히 회사에 출근하고, 퇴근 후엔 자취방 컴퓨터 앞에 앉아 스토리가 안 써져 끙끙대는 삶을 살 것이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전세 사고 따위는 내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실패하여 빈털터리가 되고 설령 서울역을 떠도는 신세가 된다 해도 내 삶은 무너지지 않으며, 죽음조차 내 삶의 기쁨을 앗아갈 수 없을 것이다. 꿈꾸던 만화가가 되지 못한다 해도 나는 괴롭지 않다. 오롯이 '나'로서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하기 때문이다.
이 글을 끝까지 읽어준 친구들과 모든 이들, 그리고 미래의 나 모두 스스로를 등불 삼아 살아가기를 바란다. 그 삶은 세상이 정해준 가치나 타인의 시선에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그 무엇의 노예도 되지 않는 자유로움이 그대들과 함께하기를.
두려워하지 말고, 나를 만나라.